1. 유적
1) 주거 유적
신석기시대의 주거 유적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발전되었다. 주거지는 전기 이전에는 얕은 수혈을 가진 원형 주거지가 일반적이었으나 중기 이후가 되면 주거 유적의 수가 증가하여 구조도 바뀌었다. 수혈의 깊이가 깊어지고 평면 형태도 시간이 흐르면서 원형, 방형, 장방형으로 다양화된다. 중기 이후에는 내부 구조에서도 돌출식 또는 복도식 출입구가 정연해지거나 기둥 배치도 4주식 등으로 정연해지는 양상을 띤다.
2) 한정 행위장소 유적
- 패총
패총은 남해안에서 융기문토기 단계에 처음 나타난다. 서해안에서는 빗살무늬토기 단계에 등장하며, 후기에 유적이 급증한다. 서해안 패총은 주로 소규모로, 짧은 기간 한정 행위장소로 사용되어 유물이 빈약한 것이 보통이다. 남해안 패총은 대규모로서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된 양상을 띠며, 유물이 풍부하다. 패각층에는 굴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외 홍합, 피뿔고둥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소량이다. 서해안 패총에서는 단기 야영시설이나 야외노지 등이 확인되며, 남해안에서도 주거지는 드물고 주로 무덤이나 야외노지가 확인된다.
- 단기거주지(야영지)
단기거주지는 경사면에 약식의 수혈을 마련한 경우와 기둥구멍만을 마련한 경우, 돌을 돌린 경우 등이 있으며 서·남해안 패총에서 종종 확인된다. 소규모 유구로서 여러 개가 한곳에서 확인되는 예는 거의 없다.
- 집석유구(야외노지)
야외노지 시설이라 생각되는 집석유구는 패총과 공반하거나 단독으로 발견되거나 혹은 주거지와 함께 확인된다. 지방산 분석 결과, 어패류나 식물성 식료 처리 등과 관계되는 시설이라 추정되고 있다.
3) 매장 유적
매장 유구로는 융기문토기 단계의 동삼동과 중기 단계의 상촌리에서 옹관묘가, 범방, 욕지도, 산등패총에서 토광묘가 발견되었다. 후포리와 같은 특수한 이차장의 사례도 발견되었으며, 화장과 신전장이 행해졌다. 연대도에서는 공동묘지가 확인되었는데, 토기와 석기, 장신구가 부장되었으나 피장자의 신분 차이는 확인이 어렵다.
4) 기타 유적
영종도 는들 유적의 방형 도랑과 상촌리의 적석유구가 의례와 관련된 유구로 보고되었지만, 아직 의례 유적의 존재는 확실하지 않다. 각지의 동굴과 바위그늘에서는 야영지 성격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동굴 유적으로는 영월 쌍굴, 단양 상시, 제천 점말 유적이 있고, 바위그늘 유적으로는 남해안의 율리 유적과 내륙의 청도 오진리, 제주 북촌리, 철원 군탄리 등이 확인되었다. 한편 창녕 비봉리의 저습지 유적에서는 통나무배와 도토리 저장구덩이, 분석 및 많은 동식물 유체가 확인되었다.
2. 유물
신석기시대의 도구 중에서 수렵 도구로는 석촉이 많으며, 창도 소량 있다. 석촉은 이른 시기에는 주로 타제이며, 동북 지역에서는 늦게까지 흑요석제 타제 석촉이 나타난다. 서북지역과 중서부지역은 마제 석촉이 주류를 이룬다. 석촉은 대체로 삼각형이나 유엽형이며, 고산리의 이른 시기 것을 제외하면 슴베가 없는 무경식이 일반적이다. 석제 어로구로서는 외낚시와 결합식 낚시, 역T자형 낚시가 확인되는데 외낚시는 동북 지역에, 결합식 낚시는 영동과 남해안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역T자형은 수량은 많지 않으나 남해안지역에서 확인된다. 석제 어망추도 내륙 강변과 서해안, 남해안 유적에서 확인되며 강변 지역보다 해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크다. 작살은 주로 대형 어류나 바다 포유류 포획에 사용된 것으로 석제와 골제가 있으며, 세부 형태는 여러 가지이나 크게 두 가지로 고정식과 분리식 작살로 나뉜다. 작살은 낚시와 마찬가지로 주로 동북 지역과 동해안, 남해안지역에 분포한다. 담수어로 도구로서는 그물추와 찔개살이 확인된다. 식물자원 채집이나 농경구로 사용되었을 도구의 대표 격인 보습 흑은 따비는 중서부지역의 신석기시대 전기 후반에 등장해 중기에 전국적으로 확산한다. 지탑리에서는 대. 중. 소형이 모두 발견되었는데, 중부 이남에서는 주로 소형이다. 중부 이남에서는 괭이로 보이는 것도 발견된다. 동북 지역에서는 서포항 3기 단계 이후 요하 이동의 중국 동북 지역에 흔히 보이는 곰배괭이가 등장한다. 수확 도구로서는 지탑리와 암사동, 살내 유적에서는 돌낫이 발견되었으나 흔한 것은 아니며, 중기 이후 중부 이남지역에서는 석도형 석기가 소량 확인된다. 식량 가공 도구로서 갈돌과 갈판은 신석기 전기부터 출현한다. 전기에는 한 손으로 회전하여 사용하는 구형 갈돌과 괴상의 갈판이 주류이지만, 중기 이후 말안장형 갈판과 두 손으로 왕복운동을 하여 사용하는 봉상 갈돌이 정착된다. 봉상 갈돌은 점차 갈판과의 접촉면이 넓어지는 형태로 변화한다. 생산용구 이외에도 각지 유적에서는 장신구와 예술품이 발전되는데, 장신구는 몸을 치장하는 데 사용된 각종 수식과 귀걸이 등이 포함된다. 문암리에서는 결상이식이, 연대도에서는 발찌가, 동삼동과 금탄리에서는 팔찌 등이 발견되었다. 예술품으로서는 서포항과 농포, 연대도패총 등에서 나온 개, 뱀, 말, 멧돼지 등의 동물 형상과 서포항, 오산리, 신암리 등의 사람 얼굴 및 토우 등이 있다. 비봉리와 동삼동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서 토기에 새긴 동물의 선각화도 발견되었다. 장신구와 예술품은 당시의 관념이나 의례 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나 이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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