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의 정의와 시기 설정
청동기 시대는 본격적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무문토기의 등장과 마제석기의 본격적 사용이 사회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구대륙 다른 지역의 청동기 시대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 후반부에야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청동기 시대는 이전의 신석기 시대와는 여러 면에서 단절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남한의 고고학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북방으로부터의 새로운 집단의 등장을 통한 한민족의 형성 과정과 동일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민족 대체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근거와 논리의 박약함이 지적되고 있다. 김원용은 한국 고고학개설 2판(1977)까지 청동기 시대의 상한을 한국 청동기의 기원지로 알려진 오르도스 청동기와의 교차 편년에 의해 기원전 7세기경으로 보았으나, 한국 고고학개설 3판(1986)에서 중국 요령성 남산 유적과 의주 신암리 유적 출토 청동기 간의 교차 편년을 통해 기원전 10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수정하였다. 1990년대 이후 계속 축적된 방사성탄소연대를 통해 최근에는 청동기시대의 상한이 기원전 13세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으며, 늦어도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형성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각목돌대문토기의 탄소연대를 인정할 경우, 상한은 기원전 15세기까지 상향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 고고학개설 2판에서는 세형동검과 원형 점토대토기의 조합이 형성되는 기원전 300년을 기점으로 청동기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양분했는데, 이후 3편은 청동기와 철기가 공존하고 있는 세형동검 시기를 초기철기 시대로 명명하고 청동기 시대와 분리했다. 한국 고고학개설 3판을 따라 세형동검이 한반도에 등장하는 시점을 초기철기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면,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하한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분기 설정
한국 청동기 시대의 세부적 분기 설정에 대해서는 남북한 사이에 견해차가 크며 학자에 따라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남한학계에서는, 송국리 유형의 발생을 기점으로 시기가 구분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조기를 설정하느냐의 여부와 초기철기 시대를 분리하느냐의 여부에 이견이 있다. 전형적인 전기 청동기 시대 문화보다 이를 것으로 생각되는 각목돌대문토기의 시기를 한국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시기로 인정하여 조기로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아직 발견 예가 적고 정확한 문화상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초기철기 시대를 청동기 시대에서 분리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한 견해차로 인해 한국 청동기시대 시기 구분에는 용어상의 혼란이 존재한다. 세형동검과 원형 점토대토기가 나타나는 시기를 청동기 시대에 포함할 경우, 청동기 시대는(조기) >전기(역삼동식, 가락동식, 흔암리식 토기 단계) > 중기(송국리식 토기 단계) > 후기(원형 점토대토기 단계)로 구분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세형동검과 원형 점토대토기의 시기를 청동기 시대에서 제외하여 초기철기 시대로 보아, (조기) > 전기(역삼동식, 가락동식, 흔암리식 토기 단계) > 후기(송국리식 토기 단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른바 송국리식 문화단계를 혹자는 중기로, 또 다른 연구자는 후기로 부르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남한의 조기 및 전기 청동기 시대
남한의 청동기 시대에서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진 토기는 각목돌대문토기와 절상돌대문토기인데, 하남 미사리, 제천 황석리, 김천 송죽리, 진주 어은·상촌리 등지에서 방형의 평면 형태에 위석식 노지를 가진 이른바 미사리식 주거지에서 발견되고 있어 미사리 유형이라 지칭된다. 최근 들어 미사리 유형의 시기를 청동기시대 조기로 설정하고, 이를 한반도 농경 전파 과정과 관련지으려는 시도가 있다. 따라서 요동반도, 한반도 서북 및 동북 지역과의 관련성이 주목받고 있으며, 신석기 말기의 이중구연토기와의 관계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주거지 중복관계와 탄소연대 측정치를 볼 때, 각목돌대문토기가 전형적인 전기 청동기 시대의 토기보다 시간상으로 이를 가능성(대략 기원전 15세기)은 충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들의 발견 예가 아직 소수이며 전기 청동기와의 관계 및 구체적 문화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각목돌대문토기를 통해 조기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또한 중국 동북 지역과 북한지역의 융대문 및 각목문 토기가 남한지역의 각목돌대문토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를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남한지역 전기 청동기시대는 탄소연대를 고려할 때 기원전 13세기경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심발형의 무문토기를 위주로 호, 천발, 홍도, 두 등으로 구성된 토기 복합체와 석부, 석도, 석검, 석촉 등의 석기군이 세장방형의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시기의 심발형 토기는 구연부의 형태에 따라 크게 가락동식 토기, 역삼동식 토기, 흔암리식 토기로 구분된다. 이들 간의 상대적 편년과 형성 과정에 대한 의견을 가장 먼저 제시한 이백규는, 역삼동식 토기는 동북 지역의 공열토기가, 가락동식 토기는 대동강과 황해도지역의 팽이형 토기가 남하하면서 발생하였는데, 양자는 남한지역에서 일정 기간 공존하다가 서로 혼합되어 흔암리식 토기로 변화한다고 보았다. 이 가설은 1980년대 약간의 변형을 거치지만, 그 골자는 1990년대까지 유지되었고, 199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반론 또는 수정론이 제시되고 있다. 전기 청동기 시대의 (세)장방형 주거지는 노지의 형태에 따라 무시설식 노지와 위석식 노지 주거지로 구분된다. 무시설식 노지 주거지는 금강 중상류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서 발견되는데, 여기서는 역삼동식 토기와 흔암리식 토기가 주로 발견되며, 위석식 노지는 금강 중상류에 집중되어 분포하며 주로 가락동식 토기가 발견된다. 전기 청동기 시대의 후반부에 들어 토기와 주거지의 형태는 점차 변형된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주거지의 장축비가 줄어들면서 방형화되고, 규모도 작아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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