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중심지의 영역
서기 300년에서 900년 사이의 고전기 마야 저지대는 많은 대규모 인구중심지들이 있고 사람들이 밀집 거주한 지역이었다. 마야인들의 정치 조직에 대한 첫 번째 단서는 '표장글자', 즉 각 도시를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상형문자 복합의 발견에서 나왔다. 이제 이러한 조합들은 마야 왕들의 직함이며 각각은 특정 정치체의 '성군'을 묘사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발견으로 당시 마야 저지대는 수많은 작은 국가들의 빽빽한 '모자이크'로 나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권력의 진정한 분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정치권력은 각별히 규모가 크고 전투에서 승승장구한 중심지들을 향해 쏠렸다. 마야 문자 체계를 계속 해독해 나감에 따라 대정치체와 소정치체 사이의 주군-가신 관계가 드러났고 그것은 이 시기 역사의 윤곽을 놀랍도록 상세하게 밝혀내는 데 기여하였다. 사이먼 마틴과 니콜라이 그루베가 처음으로 제시한 모델에서는 복수의 강력한 마야 국가들이 느슨한 구조를 이룬 '패권 지향' 체계들의 핵이었으며 그것들은 종속국가들을 흡수하여 더 큰 단일체가 되려고 하지 않고 다만 일정한 통제권만 행사하였다. 마야의 정치 경관에서 주역들로는 꼬빤, 띠깔, 깔락물, 빨렝께, 그리고 까라꼴과 같은 인상적인 대규모 중심지들이 있다.
마야의 권력 상징
고대 마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그간 무엇인지 알 수 없던 한 문자에 대한 '최후의 대해독' 이라 불린 연구성과 덕택에 지난 30년 동안 아주 많이 증가하였다. 그 이전에도 우리는 마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내었으며 그 과정에서 마야인들의 도시와 그것들에서 발견된 복잡한 명문을 담은 석비들은 절대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명문(상형문자)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54년 위대한 마야 학자 에릭 톰슨 경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고전기 명문의 문장들은 모두 전적으로 시간의 경과와 천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들은 개개인은 전혀 다루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이름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로써 누구인지 식별된 개인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1960년 워싱턴 카네기인문연구소의 타티아나 프로스코리아코프는 특정 마야 왕조의 통치자들을 식별해내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후로 통치자와 장소를 나타내는 상형문자들이 점점 더 많이 인식되었다. 사실 톡슨의 판단과는 반대로 말할 수가 있다. 이제 대부분의 마야 석비는 거의 언제나 이름을 알 수 있는 통치자들의 재위 중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소련 학자 유리 크노로소프의 통찰력을 따라 이제 우리는 그 상형문자들이 음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즉 그것들은 (진정한 표의문자가 그렇듯이) 개념이 아니라 음절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러므로 언어이다. 바야흐로 엄청난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마야 고고학은 이집트학이나 다른 대문명들에 대한 고고학 연구처럼 역사 문헌의 도움을 충분하게 받는 분야가 되었다. 이전에는 디에고 데 란다 같은 멕시코의 초기 스페인 역사가들이 남긴 문헌 증거들에 의존해야 하였다. 이러한 학자들은 그때가 고전기 마야가 끝난 지 이미 6세기가 지났을지라도 살아남은 많은 지식을 근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석비 명문들을 해독함으로써 이중의 문헌 혜택을 누리고 있다. 즉 스페인 정복자들이 주는 혜택과 고전기 마야인 스스로가 주는 혜택이다. 오늘날은 석비 하나만을 해석해내어도 마야 신앙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한 예로서 알프레드 모즐래이가 고전기 마야 도시 야슈칠란에서 떼어내어 대영박물관에 준 마야의 걸작 미술품 중 하나인 상인방 돌을 들 수 있다. 이 상인방 돌은 프로스코리아코프에 의해 좀 자세히 연구된 바 있다. 이는 또한 미국 미술사학자 린다 쉘리와 메리 엘렌 밀러가 그들의 놀라운 책 (1986)에서 논의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 있는 인물은 '방패 재규어'란 이름의 아슈칠란 통치자이다. 그는 불이 붙은 횃불을 높이 쳐들고 있는데 이는 그 장면이 어두운 실내 공간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는 머리 뒷부분에 깃털을 달고 있으며 "그의 머리 꼭대기에는 쭈그러든 그의 과거 희생물의 머리가 띠로 묶여 있어서 신들이 드실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방패 재규어의 큰 통을 돋보여 준다." 그의 앞에는 부인인 카발 속이 무릎을 꿇고 있다. 그녀는 왕도 곧 동참할 피 흘리기 의식을 이미 시작하였고 지금은 구멍을 뚫은 혓바닥에 가시가 달린 끈을 끼워 당겨내고 있다. 그녀의 옷은 고전기 마야의 직조를 놀라우리만치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명문은 통치자와 그 아내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으며 마야 장기력으로9.13.17.15.12 5엡 15막의 연대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서기 709년 10월 28일에 해당한다. 이 기념물 및 이와 유사한 다른 유물들은 우리에게 아주 다양한 분야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그것들은 마야 문자의 용도를 예시한다. 즉 그것들은 놀랄 정도로 정확한 마야 달력을 쓰고 있으며 또 우리에게 마야의 우주 관에 대한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그리고 마야 역사의 기본 틀로서 왕에 관련되고 정확한 연대를 가진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것들은 이로써 마야의 정치 지리학적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것과 그 밖의 비슷한 표상들은 미국 학자 조이스 마르쿠스가 적절하게 이름 붙였듯이 '권력의 도상술'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다. 또 그것들은 통치자가 특정한 때에 신들이 먹을 양식으로 자기 피를 흘릴 의무를 갖고 있었던 마야인들의 신성한 의식들을 나타낸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념물들을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이 도상이 전 세계의 위대한 미술 양식 중 하나라는 사실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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