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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한국 고고학의 신석기 시대

by 버미무이 2023. 6. 26.

 

신석기시대 개관

신석기시대는 간석기(마제석기)의 사용, 농경과 정작 생활 및 토기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토기의 등장을 신석기시대의 기점으로 삼으면,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예로 볼 때 약 1만 년 전 시작되어 기원 2,000~1,500년 무렵까지 지속되었다고 여겨진다. 신석기시대의 연구는 토기 편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신석기시대 토기는 융기문과 압날문 계열의 토기에서 침선문 계열, 즉 협의의 빗살무늬토기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동북아에서 관찰되는 일반적 경향이다. 그러나 융기문토기의 연대와 계통 및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확산과 편년 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으며, 중서부 이남의 빗살무늬토기는 뾰족한 바닥을 갖고 있어 주변 지역의 토기와 다른 모습이다. 신석기시대는 기본적으로 수렵채집 경제 사회였으나, 지역에 따른 환경의 차이와 시간에 따른 생업 경제의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동북 지역이나 남해안지역의 이른 시기에서는 어패류와 바다 포유류 등을 주요 식량자원으로 삼았으나, 중서부지역에서는 어패와 함께 식물성 식량자원이 주요 자원이었다. 기원전 4천년대가 되면 중서부지역을 시작으로 조를 경작한 초기농경이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3500년 무렵 남부지역까지 확산하였다. 주요 재배 곡물은 조와 기장으로서, 농경 관련 도구의 기종과 형태와 더불어 초기농경은 한반도 북부의 요녕과 그 이동지역에서 보이는 양상과 유사하다. 주거지는 움집(수혈주거지)이 기본으로 빗살무늬토기 단계에 전국적으로 확산하였다. 주거지의 평면은 원형이나 방형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변화한다. 후기 단계의 주거지는 장방형으로 구릉 위에 위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지역구분과 편년

신석기시대 유적은 전국에서 발견된다. 이른 단계의 신석기시대는 납작 바닥(평저) 토기로서 동북아시아 공통의 전통을 보여준다. 이 단계의 문화권역으로는 서북지역, 동북 지역, 강원 영동 및 남해안지역이 설정되고 있다. 서북 및 동북 지역은 압록강과 두만강 대안 지역을 포함하는데, 지자문토기문화권과 보이스만문화권에 속한다. 침선문계 토기가 등장한 다음에는 서북지역, 동북 지역, 중서부지역, 강원영동지역, 남부내륙지역 및 남해안지역의 권역이 설정된다.
신석기시대의 편년은 한반도 전체로 볼 경우 보통 전기. 중기. 후기의 세기로 나누어 보고 있다. 그러나 고산리 유적 발견 이후에는 전기 이전의 시기로서 초창기 또는 고신석기 단계가 설정되기도 한다.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일반적으로 침선문토기가 유행한 시기를 기준으로 그 앞뒤의 시기를 구분할 수 있는데, 한국 신석기시대에서도 그러한 경향성이 보인다. 전기는 전형적 침선계 빗살무늬토기 등장 이전 단계로서, 평저를 특징으로 한다. 지자문토기, 융기문토기, 오산리식 토기, 영선동식 토기 등이 이 시기에 속한다. 중서부지역에서는 전기 후반에 첨저 빗살무늬토기가 등장한다. 중기에는 침선계 빗살무늬토기가 확산하였다. 동북과 서북지역에서는 평저토기가 계속되지만, 영동지역을 포함한 중서부 이남지역에서는 첨저의 포탄형 토기가 유행하였다. 후기에는 무늬 없는 토기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동북과 서북지역에서는 뇌문, 중서부지역에서는 동일계 침선문, 남부내륙 및 해안지역에서는 이중구연 등의 특징이 토기에서 관찰된다. 이러한 양상은 동북아 전체와 대비할 때 침선문토기가 등장해 중심을 이루는 중기를 기준으로 그 앞뒤를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도 고산리 유적은 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에서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 초창기의 양상과 대비될 만하다. 그런 유물은 기원전 6300년 무렵 일본 큐슈에서 분출한 화산재보다 아래에서 발견되어 신석기시대 전기에 앞선 개시기의 설정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유물은 제주도 내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한반도 전체에 걸친 신석기시대 개시기의 양상은 앞으로 밝혀져야 한다. 융기문토기의 편년에는 논란이 있었으나, 현재는 평행융기문이 고식이며, 횡대구획이 붕괴된 형태가 신식으로서 그 사이에는 다양한 문양이 존재한다는 의견의 일치가 대체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토기의 세부 편년과 하한, 계보 등은 확실하지 않다. 시베리아 기원설 등장 이후, 융기문토기는 흑룡강 중류와 연해주 남부의 이른 시기와 관련된다고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관계는 불확실하다. 압인문과 자돌문계 토기와의 공존 여부도 논란거리로서, 영동지역에서는 오산리식 평저토기와 공존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중서부지역의 신석기시대 연구에서는 한강 유역 중기의 규정문제를 비롯해 신석기 후기 단계의 세분, 금탄리 1식(계) 토기의 편년과 기원 등이 주요한 연구 과제이다. 남부지역에서는 빗살문토기의 확산 경로, 후기 단계 봉계리식 토기와 수가리 피식 토기의 관계가 논의되고 있다. 금강식 토기로 불리던 능격문토기는 신석기시대 중기 후반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남부내륙을 중심으로 유행한 형식임이 밝혀졌다. 또 후기의 대표적 토기로 알려졌던 이중구연토기에 대해서는 새로이 계보와 편년이 연구되고 있다. 동북부지역에서는 자이사노프카문화의 승선문토기 발견에 힘입어, 승선문 토기와 서포항 3기의 편년적 위치, 서포항 3기와 4기의 구분 또는 통합 여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