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법과 역사학적 편년
고고학의 연대측정은 지난 세기 초쯤에 최초의 과학적 연대측정 기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거의 전적으로 역사학적 방법에 의존하였다. 다시 말하면, 옛사람들 스스로가 설정한 편년 및 역법에 고고학 자료를 연계하는 방식을 썼다. 고대 세계의 문자사용 사회들은 자신의 역사를 문서로 기록하였다. 로마인들은 사건들이 일어난 때를 집정관과 황제의 재위 년으로 환산하여 기록하였고 그리스인들은 오늘날 통상 서기전 776년으로 잡는 제1회 올림픽경기 개최년으로부터 셈하여 기록하였다. 이집트, 근동 그리고 고대 중국의 역사는 각 '왕조' 집단을 구성하는 역대 왕들을 기준으로 기록되었다. 고고학자가 초기 역사 편년을 가지고 작업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요점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그 편년 체계는 면밀한 복원작업이 필요하며 어떠한 통치자 혹은 왕의 명부든지 사리에 맞게 완비되어야 한다. 둘째, 그 명부가 각 재위 연수를 믿을 만하게 기록하고 있더라도 단지 '부유 편년'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재 우리의 역법에 연계되어야만 한다. 셋째, 특정 유적의 연대측정 대상 유물, 유구들이 예컨대 당시 통치자를 언급하는 명문과 공반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역사 편년에 어떻게든 연계가 되어야 한다.이 요점들은 이집트와 마야의 편년을 예로 들면 잘 설명할 수 있다. 이집트 역사는 31왕조로 정리되어 있고 그 왕조들은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으로 편성된다. 이 현대 통람은 이른바 토리노 왕력을 포함한 몇 개 문헌에 기초해 종합한 것이다. 이 종합안은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각 재위 연수를 추산하고 있는데, 그 정복 년은 그리스 역사가의 정보를 이용하여 서기전 332년으로 확실하게 고정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집트 왕조들은 알렉산더 정복 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대측정이 될 수 있으나, 다만 정확한 각 재위 연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체계는 천문학을 이용하여 검증하고 개선할 수가 있다. 이집트의 역사 문헌은 천문학적 사건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 사건들의 연대는 현재의 천문학적 지식을 이용하고 그때 이집트의 어디에서 그러한 관찰이 이루어졌는지를 알면 아주 독자적으로 측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역사 연대는 서기전 664년 이후가 되면 일반적으로 아주 신빙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신왕국(서기전 1539년~1069년경)에 대해서는 오차 폭이 10~20년이기에 초기왕조 시기인 서기전 31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누적 오차가 약 200년에 달할 수 있다. 메조아메리카의 역법 체계에서는 마야의 역법이 가장 정교하였다. 그런데 이는 유럽의 역법이나 근동의 역법과는 달리 역대 왕조 및 통치자의 기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메조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원리로 운용되는 역법 체계를 각기 갖고 있었다.
역사 편년의 이용
고고학자로서는 역사 편년에 밀접하게 연계할 수 있는 유물이 풍부할 때는 역사 편년을 이용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래서 띠깔이나 꼬반 같은 마야의 주요 유적에서는 역연대 명문을 가진 수많은 석비가 있어서 그와 공반된 건물들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이를 흔히 이용할 수가 있다. 그리고 다시 그 건물에 공반된 유물들도 연대를 측정할 수가 있다. 예컨대 토기의 형식 변천 체계가 구축되어 있고 그 몇 형식의 토기들이 이처럼 역사학적으로 연대가 측정된 정황 속에서 발전된다면 형식 변천 체계 자체가 연대측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명문 자료가 없는 유적이나 정황인 경우에도 비슷한 토기 형식들이 나오면 그것을 통해 개략적으로 연대측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때로는 유물 자체가 연대를 담고 있거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통치자의 이름을 담고 있기도 하다. 상형 명문을 가진 고전기 마야의 많은 토기가 그러한 예가 되겠다. 유럽의 로마 시대나 중세에서는 주화가 그와 비슷한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 주화들이 통상 발행 통치자의 이름을 담고 있어서 다른 명문이나 기록을 통해 대개 그 통치자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주화나 유물의 연대는 그것이 발견된 정황의 연대와 똑같지는 않다. 주화의 연대는 그것이 만들어진 해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밀폐된 고고학적 퇴적층 안에 들어 있는 경우 이는 그 퇴적층의 상한연대를 설정해줄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퇴적층은 주화의 (제조) 연대보다 이를 수는 없으며 아마도 늦을 것이다. 한 나라에서 잘 정립된 역사 편년은 자체 역사 기록은 없어도 그 문자 사용국의 역사 속에는 언급이 된 이웃 나라와 그보다 더 광범위한 지역의 사건들을 연대측정하는 데 이용될 수가 있다. 또 고고학자들은 이와 유사하게 교차연대결정법을 이용하여 수입 물품이나 수출 물품을 통해 편년 연계를 확장할 수가 있다. 이집트에서 정확하게 연대가 측정되는 이집트 물품들이 실제로 에게해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나타남으로써 그것들이 발견되는 정황을 연대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교차연대결정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처럼 A에서 B로(에게해 지역에서 이집트로), 그리고 B에서 A로 연계된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유럽 선사학의 많은 부분은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이웃 지역 사이를 연속적으로 연계하는 이 방법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유럽의 가장 외진 곳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이집트 편년에 따른 체계를 이용하여 서기전 몇 년으로 절대연대가 매겨졌다. 그러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들을 보정해본 결과 편년 체계는 무너지게 되었다. 이집트와 에게해 지역 사이에 연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실제 수입품과 수출품을 근거로 하기에 타당할지라도 에게해 지역과 나머지 유럽 지역 사이의 연계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다. 선사시대 유럽의 편년 체계 전체가 잘못된 가정 위에 구축되었던 셈이고 그 가정이 교정되면서 '제2차 방사성탄소 혁명'이라 부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문자 정보를 근거로 신뢰할 만한 역사 편년을 가진 나라에서는 역사학적 방법에 의한 연대측정이 고고학자들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다만 역법에 심각한 불확실성이 있다거나 현대 역법체계와 연계하는 데 의심스러운 바가 있는 곳에서는 상호 대조하는 작업을 할 때 적어도 다른 절대연대측정법을 통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고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대연대측정법(방사성 시계 이용법,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방사성탄소측정연대의 보정) (0) | 2023.04.28 |
---|---|
절대연대측정법(매년 주기 이용법, 해빙 연층법, 나이테 연대측정법) (0) | 2023.04.27 |
상대연대결정법(플라이스토세의 편년, 화분 연대측정, 동물상 연대측정) (0) | 2023.04.24 |
상대연대결정법(순서배열법) (0) | 2023.04.23 |
상대연대결정법(형식학적 변천 순서) (0) | 2023.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