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 존재는 시간을 경험한다. 현대의 개개인은 평생 대략 80여 년의 시간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부모나 조부모의 기억을 통해서 한두 세대 거슬러 올라간 앞 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또 더 간접적이기는 해도 역사 연구를 통해 수백 년 전에 기록된 시간에 이따금 아주 생생하게 다가갈 수가 있다. 하지만 수천 년, 심지어는 몇백만 년이라는 거의 상상할 수도 없이 오랜 시간대에 걸친 과거 인간의 경험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오로지 고고학뿐이다. 다소 놀라운 얘기지만 과거를 연구하기 위해 어떤 시기나 사건이 햇수로 정확히 얼마나 오래전에 존재하였거나 일어났는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C. J. 톰센의 위업은 구대륙의 옛 도구들을 석기, 청동기, 철기라는 삼부체계로 설정한 것이었으며, 층서 발굴은 이것이 계기적 편년 배열임을 확증해 주었다. 즉 석기는 청동기 앞에, 철기는 청동기 다음에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고학자는 각 단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혹은 각 발전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알지조차 못하더라도 이 계기 순서를 이용해서 예컨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가면서 일어난 도구 기술의 변화상을 연구할 수가 있다. 이처럼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비해서 더 오래되거나 새롭다는 생각은 상대연대결정법의 기초를 이룬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고학 연구에서 첫 작업은 아직도 상대연대 결정에, 즉 유물, 퇴적층, 사회 그리고 사건들을 이른 것부터 늦은 것으로 계기 순서로 배열하는 작업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국적으로 이 계기 순서의 각 부분이 지금부터 전체 햇수로나 절대 햇수로 얼마 전인지를 알고자 한다. 즉 절대연대측정(때로는 계년식 연대측정이라 부름)의 방법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절대연대는 예컨대 농경의 도입과 같은 변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어났는지, 또는 그것이 세계 도처에서 동시에 일어났는지 아니면 때를 달리하면서 일어났는지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고고학의 많은 부분에서 신뢰할 수 있었던 절대연대가 투탕카멘의 재위 시기는 서기전 14세기라든지 시저는 서기전 55년 영국에 침입하였다고 하는 역사 연대가 사실상 유일하였다. 절대연대를 측정하는 독립적 수단들은 겨우 지난 50년 동안에야 비로소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그 과정에서 고고학을 변모시켜 놓았다.
시간의 측정
우리는 시간의 경과를 어떻게 알아채는가? 우리는 자기 삶 속에서 낮과 밤의 밝음과 어두움이 번갈아 일어나고 또 사계절이 매년 반복되는 현상을 통해서 시간의 경과를 깨닫는다. 사실 이것들은 현대 천문학과 핵물리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시간을 관측하는 데서 인간 수명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방법들이었다. 나중에 보듯이 몇 가지 연대 결정법은 아직도 이 1년의 계절 경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고고학의 연대 결정법은 그간 다른 물리작용들을 점점 더 근거로 삼게 되었데, 그 작용 중 다수는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할 수가 없다. 이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방사성 시계의 이용이다. 어떤 연대 결정법을 쓰든 간에 우리가 편년을 구축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은 합치된 시간 측정법이다. 인간이 측정하는 체계는 대부분 햇수를 단위로 계산한다. 따라서 해가 반복되는 것과는 무관한 방사성 시간 같은 연대측정치조차도 햇수로 환산될 필요가 있다. 연대측정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연대 결정법 그 자체보다는 바로 이 햇수 환산의 잘못 탓인 경우가 흔하다.
고고학 연대 결정법에는 일반적으로 기법 자체가 아닌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 그 한 가지는 정황을 파악하는 문제인데 이는 우리가 쓰는 표본이 측정하려는 정황에 정말로 확실하게 관련되었음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다른 한 가지는 좀 더 최근의(혹은 때로는 더 오래된) 물질로 오염되는 문제이다. 이외에도 정밀성의 문제가 있다. 즉 많은 연대측정법이 오차범위를 가진 형태로 연대를 내놓는데 그 범위가 수백 년이 넘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수천 년이 넘을 수도 있어서 고고학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방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밀도에 대해 지나치게 큰 기대를 갖는 경우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햇수로 셈하는 우리의 시간 잣대는 시간 축에 고정된 어떤 시점에서 내려오거나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대를 재어야만 한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그것이 관례상 서기 1년으로 되어 있는 (0년은 없으므로) 예수 탄생 년을 취하여 그 이전은 BC(before Christ) 몇 년, 그 이후는 AD(이는 Anno Domini라는 라틴말의 약자로 "우리 주 오신 후"라는 뜻) 몇 년으로 센다. 이제 많은 학자는 문화적 내포를 피하기 위해 BC, AD 대신에 공통 기원 이전(Before the Common Era, BCE)과 공통 기원(in the Common Era, CE) 같은 용어를 선호한다.
방사성을 이용한 방법들로부터 연대를 도출하는 과학자들은 위에 말한 역법 중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중립적 국제체계를 원하였기에 현재로부터 햇수를 세어 올라가기(BP, before the present 지금부터 몇 년 전)로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과학자들 역시 하나의 변치 않는 고정 점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BP의 의미를 "1950년부터 몇 년 전"(이는 리비가 처음으로 방사성을 이용한 방법, 즉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확립한 해를 대략 이 해로 잡은 것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과학자들에게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그 외의 모든 이들에게는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난 수천 년간에 대한 어떤 BP 연대든 BC/AD 체계로 환산하는 것이 가장 명확하다. 그렇지만 서기전 1만년 이전부터 2, 3백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석기시대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이 'BP'와 몇 년 전'을 구분 없이 섞어 쓰는데 그사이의 50년 정도 차이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처럼 아득히 먼 옛날 시기의 유적이나 사건을 연대 측정하는 데서는 '진짜' 연대에서 잘해야 수천 년의 폭을 가진 연대로 할 뿐이다.
이 구석기시대의 연대가 지닌 의미에 관한 논의로 보건대 시간 및 그 측정에 대한 개념과 해석은 전체적으로 연구 대상 시기에 적합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음이 분명하다. 구석기시대에 대해 가장 정밀한 연대조차도 해당 시기를 수천 년의 시간 폭 속에서 어렴풋이 알려줄진대 하물며 고고학자가 구석기시대의 사건들을, 이를테면 파라오 치하의 고대 이집트처럼 개개인의 삶으로 채워진 통상의 역사와 같은 식으로 복원하기를 희망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반면에 구석기 고고학자들은 현대인의 진화 도정을 구성하였던 광대한 장기적 변화 중 일부를 통찰할 수가 있는데, 그러한 지견들은 좀 더 짧은 시간 폭의 시기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고고학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시간대에서는 어떤 경우든 그처럼 폭넓은 견지의 정형성을 쉽게 분별하기에는 '세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이 각자의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은 해당 시기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연대측정치의 정밀도, 즉 초점의 선명도에 따라 아주 크게 달라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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